사람나무 심리상담연구소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23. 사랑보다 더 깊은 사랑 본문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23. 사랑보다 더 깊은 사랑
상대의 단절과 외로움을 알아차리라
화는 긍정 자원 바닥났단 신호
불안은 주변에 위협 존재 징후
문제 행동 시 도움 요청 감지해야
“다 너 때문이야. 너 만나고 나서 내가 이렇게 됐어!”
“제발 좀 하지 말라는 건 안 하면 안 되니? 너는 내 말을 귓등으로 들어?”
“네가 나한테 해 준 게 뭔데? 너는 항상 그래! 너랑 얘기해 봤자, 내 입만 아파!”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쩌다 이런 대화만 주고받게 된 걸까?
자기는 원래 안 그랬는데 그를 만나서 성격 파탄자가 됐고, 조금만 개선해 달라는 부탁에도 그는 끝까지 변하는 게 없고, 아무리 잘해 보려 노력해도 그는 늘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한다. 그러고는 이렇게 맨날 싸우느니 차라리 그만두자고 말한다. 사랑이 지옥도가 된 풍경이다.
예전 일이다. 꽤 모범적인 학생이 한동안 학교를 나오지 않아 그 배경이 궁금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채로 등장한 학생은 시름시름 앓는 것처럼 어딘가 아파 보이고 무기력했다. 여러 루트로 조심스럽게 알아보니, 부모님이 이혼해 그 충격으로 정신과를 다니며 약을 먹는다고 한다. 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게 싸우는 걸까.
교직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학생들과 마주치고, 또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수업을 한다. 서로 신념이 다른 선생님들과 만나게 되고, 다양한 요구를 가진 학부모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만남이 얼마나 고단한지,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고단함을 진단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지금 나에게 긍정 자원이 바닥났다는 신호이고, ‘불안이 밀려오는 것’은 지금 나를 위협하는 것들이 주변에 포진해 있다는 신호임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비상 센서에 불이 켜질 때마다 그 원인들을 찾아보고 점검한다.
학생들과 지내다 보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거나 남 탓을 하는 경우다.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었나, 마음이 들끓다가도 ‘아, 내가 지금 긍정 자원이 바닥났구나!’라는 알아차림에 곧 평정심을 되찾는다. 그리고 모든 문제 행동은 도움을 요청하는 왜곡된 신호이자, 숨은 욕구를 발견하는 단서임을 알아차린다. 세상 모든 것은 서로 조건 지어져 일어난 것이니, 그 결과인 감정과 행동만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원인인 채워지지 않은 욕구에 초점을 맞출 때, 매직아이처럼 떠오르는 새로운 진실을 만날 수 있다.
단계적 관문처럼 사랑 이후에 등장하는 새로운 사랑이 있다. 애착이다. 애착은 어린 시절 아이와 양육자와의 관계 패턴으로, 아이가 거리낌 없이 자신의 미성숙한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대상과의 친밀감을 뜻한다. 새롭게 등장한 이 애착은 상대에게 무의식적으로 부모님과 같은 안전한 환경과 배려가 있는지를 확인하려 하고, 또 어린 시절 마땅히 받아야 했으나 받지 못한 사랑을 자기도 모르는 새 현재 관계에 재연하며 빚을 독촉하듯 파괴적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너는 정말 구제불능이야!”라는 공격은 실은 “언제든 내 곁에서 나를 지켜 줘!”라는 단절과 외로움에 대한 왜곡된 비상 신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퇴행적 사랑의 숨은 사연들이다.
왜 우리는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싸우는 걸까? 사랑보다 더 깊은 사랑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오래된 출구를 발견하게 된다.
김권태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 교사
https://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0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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